이 글은 평범한 업데이트를 담은 편지가 아닙니다. 제가 요즘 하나님께 도전받고 있는 내용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어쩌면 여러분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불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물이 옵니다.

저는 우리가 주님을 예배할때 생명의 물이 흘러넘치는것을 보는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주님께서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분의 순서는 “불이 먼저, 그다음에 물”이 온다라는 점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를 생각해보세요. 그의 시대에는 나라 전체가 비를 간절히 필요로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열방이 영적으로 사막과 같이 메말라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믿음의 오아시스를 곳곳에 두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의 단비가 절실히 필요로 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비가 오기 전에,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과 맞서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 땅에 임한 것입니다. 엘리야가 택한 싸움의 방법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붙들며 그의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고정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진짜 싸움은 결국 ‘누구를 예배할 것인가’ 하는 중심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원하는 것에 마음의 중심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비를 원했고, 그래서 대부분 하나님을 떠나, 비와 풍요의 신이라 불리는 바알을 섬겼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다양한 ‘바알’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종교적이든, 성적이든, 상업적이든 간에 사람들은 ‘나의 진리’라는것을 주장하며 절댁적인 진리를 부정합니다. 혼란과 우울함이 이 세상에 만연한 이유는, 사회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열왕기상 18장 21절)

엘리야의 전쟁터는 제단, 곧 예배와 희생의 자리였습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열두 지파는 하나로 연합 되지 못하였고, 하나님을 예배하지도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열두 지파 각각을

상징하는 돌들을 다시 모아 제단을 회복시켰습니다. 그가 한 이 ‘수축하다’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본래 ‘치유하다’라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혼자라고 느꼈지만, 언약의 진리를 믿으며 이를 위해 담대히 홀로섰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 이삭을 통해 태어난 열두 지파 모두와 언약을 맺으셨고, 엘리야는 그들을 다시 하나로 부른것입니다.그리고 그는 제물을 준비했습니다. 엘리야는 물로 제물에 세례를 주었습니다. 물 12통을 부어 제물을 적시며, 불의 세례를 기다렸습니다. 침례 요한처럼 그는 물로만 침례를 줄 수 있었지만, 불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실 것임을 믿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제단을 다시 수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연합할 수 있도록 부르셨습니다. 그 연합을 방해하는 어떤 것도 십자가 앞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우리가 감히 누굴 선택하고, 누굴 배제할 수 있겠습니까?
요한의 물세례는 죄 사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로마서 6장 11절)


스코틀랜드의 헤브리디스 부흥에 대해 설교하면서 던컨 캠벨 목사님은 한 청년의 기도를 이렇게 전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지금처럼 기도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 진심이 아니라면, 이것은 그저 감상적인 위선에 불과합니다. 내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 손이 깨끗합니까? 제 마음이 정결합니까?”

두 마디의 기도가 드려진 그 순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부어졌고, 그 평범했던 자리는 비범한 은혜의 자리로 변화되었습니다. 바로 그날, 부흥이 임했고, 그곳에서 풀어진 하나님의 능력은 루이스 섬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던컨 캠벨, 『부흥의 대가와 능력』 4장)

엘리야에게는 대안이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오직 깨끗한 손과 정결한 마음만이 있었고, 그에게 놓인 선택지는 오직 주님께서 그의 마음에 응답하여 불을 내려주시거나 대결에서 패배하여 죽는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제단 위에 제물이 있었지만, 사실상 엘리야 본인 또한 제물로 드려진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오늘날의우리에게도 그런 절대적인 의존의 자리, 다르게 말해 절박함의 자리로 부르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동시에 영광스러운 믿음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 일은 오직 성령님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다.

불이 오지 않으면, 물이 흐를 수 없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불을 보아야 했습니다. 엘리야의 시대엔, 그것이 제단 위에 임했습니다. 오순절에, 백성들은 제자들 위에 임한 하나님의 불이 가져온 일들을 두 눈으로 지켜보였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도 우리 안에 임한 그 불이 가져올 일들을 두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제단에 불이 떨어지자, 엘리야는 곧 “큰 비 소리가 들린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지만, 그의 영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들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순절에 불이 임하자, 예수님의 예언은 성취되었고, 생수의 강이 믿는 자들의 심령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7장 37–38절)

그 첫 번째 영광스러운 생수의 날에, 삼천 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먼저 불이 생수의 강 이전에 임해야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임할 불이 마음속 흠결들을 불살라
깨끗한 손과 정결한 마음을 가져오게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우리는 주님 앞에 절박합니까?

기꺼이 그분께 순종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오 주님, 도와주소서.

사랑을 담아,
게일 드림